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1부.[2001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작성자 이옥수(빠빠빠)
등록일2020-06-01 07:25:51
조회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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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2부

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3부

 

 

 

여자와 달리 한국 남자 탁구는 1995년 이전까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전까지 1969년 뮌헨(Munich) 대회에서 4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한국은 1969년 뮌헨 대회 남자 단체전 2 그룹 경기에서 서독에 이어 2위에 오르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3, 4위 결정전에서 1 그룹 2위 유고슬라비아에 0 대 5 완패를 당해 최종 4위에 올랐습니다. 결승전은 일본이 서독을 5 대 3으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 그룹 최종 순위 - 1. 일본, 2. 유고슬라비아, 3. 잉글랜드, 4. 소련, 5. 헝가리, 6. 덴마크

2 그룹 최종 순위 - 1. 서독, 2. 한국, 3. 스웨덴, 4. 체코슬로바키아, 5. 프랑스, 6. 아일랜드

 

한국은 1995년 톈진(Tianjin)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세계 대회 남자 단체전 사상 첫 입상(김택수, 유남규, 이철승, 추교성, 김봉철)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세계 대회 단체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룹별 예선, 본선으로 나눠 진행되었습니다. 그룹별 예선은 총 16개 팀을 A 그룹 8개 팀, B 그룹 8개 팀으로 나눠 풀리그로 경기했고, 본선은 각 그룹별 상위 4개 팀이 다시 8강 토너먼트로 최종 우승 팀을 가렸습니다. 한국 남자는 A 그룹에서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루마니아, 러시아, 일본, 스웨덴과 경기를 해 5승 2패 조 3위의 성적으로 8강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8강에서 세이브 형제가 이끄는 벨기에를 3 대 2로 꺾고 4강에 올랐고, 4강에서 왕타오(Wang Tao), 마원거(Ma Wenge), 공링후이(Kong Linghui)가 출전한 중국에 2 대 3으로 패했습니다. 한국은 4강에서 중국에 패한 후, 3, 4위전에서 프랑스를 3 대 2로 꺾고 최종 3위의 성적으로 남자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당시, 한국이 따낸 동메달은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남자 단체전 동메달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1997년 맨체스터(Manchester)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남자 단체전 2회 연속 입상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C 그룹에서 독일에 0 대 3으로 패해 8강 직행에 실패했지만, 16강 유고슬라비아, 8강 일본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4강에서 또다시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4강에서 류궈량(Liu Guliang), 왕타오, 공링후이가 활약한 중국에 1 대 3으로 패했고, 3, 4위전 독일과의 재대결에서 3 대 0 완승을 거두며 세계 대회 단체전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나토(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으로 개인전(에인트호번), 단체전(쿠알라룸푸르)이 분리 개최된 2000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대회에서 다시 노메달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한국 C 그룹(그리스, 벨라루스,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경기에서 체코에 1 대 3으로 패해 8강 직행에 실패했고, 8강에서 또다시 중국에 0 대 3 완패를 당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한국은 1999년 에인트호번(Eindhoven) 대회를 끝으로 세계 대회 7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유남규(Yoo Namkyu)가 은퇴했고, 그 빈자리를 17살(1982년 8월 5일생) 유승민(Ryu Seungmin)이 채웠지만, 결과는 0 대 3 완패였습니다. 한국은 김택수(Kim Taeksoo), 오상은(Oh Sangeun), 유승민이 차례로 출전해, 마린, 류궈량, 공링후이에 차례로 패했습니다.

 

 

한국 조 1위 16강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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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TTF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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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결과)


당시 경기 방식은 지금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팀 랭킹 상위 24개 팀을 3개 팀씩 8개 그룹으로 나눠 경기를 해, 각 그룹 1위 팀은 본선 16강에 직행하고, 2위 팀은 24강을 한번 더 거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3위 팀은 하위 디비전인 세컨드 디비전 1위 팀들과 챌린지 경기를 한번 더 거쳐 이긴 팀이 24강에 올랐습니다. 챌린지 결과 퍼스트 디비전 3위 팀 중 총 4개 팀(덴마크, 러시아, 슬로베니아, 캐나다)이 세컨드 디비전 1위 팀에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세컨드 디비전 1위 팀 중 총 4개 팀(크로아티아, 북한, 노르웨이, 잉글랜드)이 24강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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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24강 대진표)


스웨덴, 중국,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8강 시드를 받은 한국은 E 그룹에서 폴란드, 홍콩과 경기를 해 2전 전승 조 1위로 16강 본선에 직행했습니다. 한국은 홍콩을 3 대 1로 이긴 다음, 폴란드에 3 대 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의 16강 본선 첫 상대는 잉글랜드를 3 대 1로 꺾은 체코슬로바키아였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F 그룹(대만,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조 2위로 본선에 올랐습니다.  F 그룹은 세 팀이 모두 1승 1패를 기록했지만, 매치 득실에서 대만이 1위, 체코슬로비키아가 2위, 스페인이 3위에 올랐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그 유명한 페테르 코르벨(Peter Korbel), 리카르드 비보르니(Ricard Vyborny)가 팀을 이끄는 결고 만만치 않은 팀으로, 24강에서 잉글랜드를 3 대 1로 꺾고 16강에 올랐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마레크 클라세크(Marek Klasek)가 1매치, 페테르 코르벨이 2, 4매치를 따내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본선은 2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40미리 시대 세계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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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는 2000년을 기점으로 2가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첫째 셀룰로이드(Celluloid) 볼의 지름이 기존 38미리에서 2미리 더 커진 40미리로 바뀌었고, 둘째 점수제가 기존 21포인트 5전 3선승제에서 11포인트 7전 4선승제로 바뀌었습니다. 40미리 볼은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이 끝나고, 그 해 10월 양저우(Yangzhou) 남자 탁구 월드컵부터 곧바로 적용되었고, 점수제는 그보다 1년이 더 늦은 2001년 9월부터 전격 시행되었습니다. 2001년 오사카(Osaka)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볼은 새로 바뀐 40미리 볼을 사용했지만, 점수제는 기존 방식 그대로 21포인트 5전 3선승제가 적용되었습니다. 2001년 오사카 대회는 개인전(남녀 개인단식, 남녀 개인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 한 번에 치러진 마지막 대회였을 뿐만 아니라, 21포인트 5전 3선승제로 치러진 마지막 세계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40미리 셀룰로이드 볼이 사용된 사상 첫 세계 대회였습니다.

 

 

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2부

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3부

 

 

 

(출처 : 빠빠빠 탁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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