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5번째 우승, 넌 차이니스 마지막 우승 이끈 해결사 페르손 형님.[2000 쿠알라룸푸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작성자 이옥수(빠빠빠)
등록일2020-05-21 22: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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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공(速攻) 탁구를 앞세운 중국 남자 탁구는 70, 80년대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중국은 70, 80년대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총 7회 우승했고, 1981년 노비사드(Novi Sad) 대회부터 1987년 뉴델리(New Delhi) 대회까지 총 4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당시, 중국 대표 팀을 이끌었던 선수가 궈위에화(Guo Yuehua), 차이전화(Cai Zhenhua), 첸롱칸(Chen Longcan/천롱칸), 장지아량(Jiang Jialiang) 이었습니다. 이 중, 궈위에화는 1981년 노비사드 대회, 1983년 도쿄(Tokyo) 대회, 장지아량은 1985년 예테보리 대회, 1987년 뉴델리 대회에서 2회 연속 개인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 장지아량 VS 얀-오베 발트너)

(출처 : 유튜브)

 

중국 탁구의 아성을 무너뜨린 팀이 바로 스웨덴이었습니다. 스웨덴은 1983년 도쿄 대회, 1985년 예테보리 대회, 1987년 뉴델리 대회에서 중국에 패해 3회 연속 준우승을 차지한 후, 1989년 도르트문트(Dortmund) 대회에서 결국 중국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이 때 스웨덴 대표 팀을 이끌었던 선수가 얀-오베 발트너(Jan-Ove Waldner), 요르겐 페르손, 에릭 린드(Erik Lindh), 페테르 카를손(Peter Karlsson), 미카엘 아펠그렌(Mikael Appelgren) 5인방이었습니다. 스웨덴은 이후 1991년 지바(Chiba) 대회, 1993년 예테보리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3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고, 얀-오베 발트너는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 요르겐 페르손은 1991년 지바 대회에서 차례로 개인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995년 톈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 공링후이 VS 류궈량)

(출처 : 유튜브)

 

하지만, 중국은 마원거(Ma Wenge), 왕타오(Wang Tao), 딩송(Ding Song), 류궈량(Liu Guoliang), 공링후이(Kong Linghui)가 출전한 1995년 톈진(Tianjin) 대회에서 다시 스웨덴을 꺾고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1995년 톈진 대회에서 스웨덴 유학파 공링후이는 남자 단체전에 이어 남자 개인단식 챔피언에 오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다음 대회인 1997년 맨체스터(Manchester) 대회에서 장-필리프 가티엥(Jean-Philippe Gatien/가시앙), 패트릭 실라(Patrick Chila), 데미앙 엘루아가 주축이 된 프랑스를 꺾고 2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스웨덴은 8강에서 중국에 1 대 3으로 패했고, 얀-오베 발트너는 남자 개인단식 결승에서 벨라루스의 블라디미르 삼소노프(Vladimir Samsonov)에 3-0(12-21, 17-21, 13-21) 완승을 거두며 역대 2번째(1989 도르트문트, 1997 맨체스터) 개인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제45회 세계 대회는 나토(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으로 사상 최초로 개인전(에인트호번), 단체전(쿠알라룸푸르)이 분리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새 천년 첫 대회가 되어버린 2000년 쿠알라룸프르(Kuala Lumpur) 대회에서 얀-오베 발트너, 요르겐 페르손이 주축이 된 스웨덴이 다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스웨덴은 8강에서 티모 볼(Timo Boll), 외르그 로스코프(요크 오스콥트)이 주축이 된 독일을 3 대 0, 4강에서 마시밀리아노 몬델로(Massimiliano Mondello), 양민(Yang Min)이 주축이 된 이탈리아를 3 대 1, 결승에서 류궈량, 공링후이가 투 톱으로 출전한 중국을 3 대 2로 이겼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5인방 중에 2명(미카엘 아펠그렌, 에릭 린드)이 은퇴했고, 주축 선수인 얀-오베 발트너(1965년 10월 3일생), 요르겐 페르손(1966년 4월 22일생) 역시 나이가 30대 중반에 다다른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중국은 공링후이, 류궈량에 이어 마린(Ma Lin), 왕리친(Wang Liqin)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최강 전력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발트너, 페르손이 이끄는 스웨덴은 그리 녹록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결승에서 중국의 3회 연속 우승을 막으며 역대 5번째(1973 사라예보, 1989 도르트문트, 1991 지바, 1993 예테보리, 2000 쿠알라룸푸르)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웨덴의 우승은 넌 차이니스(Non Chinese) 남자 팀이 차지한 세계 대회 마지막 우승이었습니다. 이후, 중국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고, 세계 대회 남자 단체전 9회 연속 우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결사 페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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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국 Table Tennis 뉴스.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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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 부터 요르겐 페르손, 얀-오베 발트너, 페테르 카를손)

(출처 : 얀-오베 발트너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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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쿠알라룸푸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결승전)

 

마지막 결승전에 스웨덴은 얀-오베 발트너, 요르겐 페르손 주전 출전, 페테르 카를손 비주전 출전했고, 중국은 류궈량, 공링후이 주전 출전, 류궈정(Liu Guozheng) 비주전 출전했습니다. 중국은 영건 마린이 개인전만 치러진 1999년 에인트호번(Eindhoven)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단체전 결승에는 류궈정이 출전했습니다. 

 

(2000년 쿠알라룸푸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결승전 스웨덴 VS 중국)

(출처 : 유튜브)

(- 양 팀 경기 대단한 명승부였습니다. 중국을 이기는 남자 팀이라니 마지막 세리머니도 멋지네요)


양 팀의 경기에서 초반은 스웨덴의 완승 분위기였습니다. 1, 2매치에 출전한 얀-오베 발트너, 요르겐 페르손이 류궈량, 공링후이를 차례로 꺾으며 2 대 0으로 앞섰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은 비주전 대결에서 페테르 카를손이 류궈정에 0-2(6-21, 16-21) 완패를 당하며 추격을 허용했고, 결국 4매치에서 기대를 걸었던 얀-오베 발트너가 공링후이에 0-2(9-21, 17-21) 완패를 당하며,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스웨덴은 중반 이후 중국에 흐름을 내주며 힘든 경기가 되고 말았지만, 스웨덴을 위기에서 구한 선수는 1991년 지바 대회 챔피언 요르겐 페르손이었습니다. 

 

(2000년 쿠알라룸푸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결승전 2매치 요르겐 페르손 VS 공링후이)

(출처 : 유튜브)

 

(2000년 쿠알라룸푸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결승전 5매치 요르겐 페르손 VS 류궈량)

(출처 : 유튜브)

 

요르겐 페르손은 류궈량과의 마지막 승부에서 2-1(18-21, 21-17, 21-18) 역전승을 이끌어내며 스웨덴에 우승을 안겼습니다. 요르겐 페르손은 1게임을 18-21로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2, 3게임을 연이어 따내며 승부를 매조지었습니다. 류궈량은 테이블 앞에서 빠른 박자로 승부를 보는 선수인 만큼, 두 선수의 경기는 밀리느냐, 버티느냐의 승부였습니다. 요르겐 페르손은 1게임을 내준 후, 류궈량의 빠른 박자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고, 1, 2구를 버틴 후, 류궈량의 좌, 우를 공략해 포인트를 쌓아갔습니다. 류궈량은 연이은 연타로 압박했지만, 요르겐 페르손의 연결이 살아나자 버거워진 쪽은 류궈량이었습니다.

 

- 당시, 공링후이, 류궈량은 이미 세계 최강에 오른 선수들인데, 페르손 형님의 양 핸드 드라이브는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이네요.

 

 

 

(출처 : 빠빠빠 탁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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