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자 탁구 시대를 알린 1995년 톈진 세계 챔피언 공링후이(Kong Linghui).
작성자 이옥수(빠빠빠)
등록일2020-04-20 09: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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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자 탁구는 1960년대 주앙제동(Zuang Zedong/주앙저동)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단식 3회(1961 베이징, 1963 프라하, 1965 류블랴나) 연속 우승에 성공한 이후, 1980년대 와서야 다시 연속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중국은 1981년 노비사드(Novi Sad) 대회, 1983년 도쿄(Tokyo) 대회에서 궈위에화(Guo Yuehua), 1985년 예테보리 대회,  1987년 뉴델리(New Delhi) 대회에서 장지아량(Jiang Jialiang)이 차례로 2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궈위에화, 장지아량 우승 당시는 중국 남녀 모두 세계 대회를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중국은 1981년 노비사드 세계 대회에서 사상 첫 전 종목 스윕에 성공했습니다. 중국 대표 팀은 남자 단체전(차이전화, 궈위에화, 쉬쯔하오, 왕후이위안, 시에사이커), 여자 단체전(차오옌화, 치바오시앙, 통링, 장더잉), 남자 개인단식(궈위에화), 여자 개인단식(통링), 남자 개인복식(차이전화/리젠쉬), 여자 개인복식(차오옌화/장더잉), 혼합복식(시에사이커/황준춘)에서 우승하며 전 종목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중국은 1981년 노비사드 대회 전 종목 스윕 이후, 1983년 도쿄 대회, 1985년 예테보리 대회, 1987년 뉴델리 대회까지 3회 연속 6개 종목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1983년 도쿄 대회(조란 칼리니치/드라구틴) , 1985년 예테보리 대회(미카엘 아펠그렌/울프 카를손)는 남자 개인복식, 1987년 뉴델리 대회는 여자 개인복식(현정화/양영자)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해 전 종목 스윕을 놓쳤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궈위에화, 장지아량 이후 더 이상 남자 개인단식에서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1989년 도르트문트(Dortmund) 대회, 1991년 지바(Chiba) 대회, 1993년 예테보리 대회에서 3개 대회 연속 결승에도 오르지 못하고, 동메달을 2개를 딴 게 전부였습니다.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는 위센통(Yu Shentong)이 4강에서 스웨덴 요르겐 페르손에 1-3(21-11, 10-21, 9-21, 11-21)로 패했고, 1991년 지바 대회는 마웬거(Ma Wenge)가 4강에서 스웨덴 얀-오베 발트너(Jan-Ove Waldner)에 1-3(21-18, 18-21, 21-7, 21-15)로 패했습니다. 1993년 예테보리 대회는 마웬거(/장 미셸 세이브), 왕용강(/조란 프리모라츠) 모두 8강에서 유럽 선수에 패해 노메달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홈 그라운드에서 개최된 1995년 톈진(Tianjin) 대회를 통해 다시 남자 개인단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중국 신예 공링후이(Kong Linghui.)는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 장-필리프 가티엥(Jean-Philippe Gatien/가시앙), 8강 스웨덴 페테르 카를손(Peter Karlsson), 4강 중국 딩송(Ding Song), 결승 중국 류궈량(Liu Guoliang)을 차례로 꺾고 사상 첫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공링후이는 중국이 셰이크핸드 시대를 맞아 스웨덴으로 탁구 유학을 보내 전략적으로 키운 선수입니다. 공링후이는 1991년 탁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처음 출전한 1995년 톈진 대회에서 19살(1975년 10월 18일생)에 곧바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1996년 1월 세계 1위까지 올랐습니다. 중국은 1995년 톈진 대회에서 공링후이, 류궈량, 왕타오(Wang Tao) 등을 앞세워 전 종목 스윕에 성공했습니다. 1981년 노비사드 대회 이후 14년 만의 대기록 달성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남자 탁구는 왕리친(Wang Liqin), 마린(Ma Lin), 왕하오(Wang Hao) 등이 차례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중국 탁구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톈진 세계 챔피언 공링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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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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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톈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개인단식 경기 결과)



(1995년 톈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 공링후이 VS 류궈량)

(출처 : 유튜브)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은 10대 영건 듀오 공링후이(19살/1975년 10월 18일생)와 류궈량(18살/1976년 10월 1일생)이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공링후이는 4강에서 중국 딩송에 3-0(12-21, 18-21, 18-21) 완승을 거두었고, 류궈량은 왕타오를 3-1(17-21, 21-15, 21-18, 21-16)로 꺾었습니다. 공링후이는 첫 출전 만에, 류궈량은 1993년 예테보리 대회에서 초반에 탈락한 이후, 2번째 출전만에 결승까지 올랐습니다.

 

두 선수는 전형에서 큰 차이가 있는 선수들이었습니다. 공링후이는 스웨덴에 유학해 포, 백핸드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정통 유럽 탁구를 배워온 선수였고, 류궈량은 백핸드의 약점을 보완한 중국식 펜홀더를 사용했지만, 백핸드보다는 박자 빠른 속공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습니다. 두 선수의 결승전은 공링후이의 역전승으로 끝났습니다. 공링후이는 3게임까지 1-2로 뒤졌지만, 4, 5게임을 연이어 따내며 최종 경기 결과 3-2(17-21, 21-16, 15-21, 21-14, 21-10)로 승리했습니다.

 

 

역대 3번째 탁구 그랜드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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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1995년 님 남자 탁구 월드컵 결승전 공링후이 VS 외르그 로스코프)

(출처 : 유튜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 공링후이 VS 얀-오베 발트너)

(출처 : 유튜브)

 

공링후이는 1995년 톈진 세계 대회 우승 이후, 1995년 님(Nimes) 남자 탁구 월드컵,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스웨덴 얀-오베 발트너, 중국 류궈량에 이어 역대 3번째 탁구 그랜드슬램에 성공했습니다. 공링후이는 류궈량보다 세계 대회, 탁구 월드컵 우승은 빨랐지만, 올림픽 우승이 4년 늦었습니다.

 

이 밖에 공링후이는 1996년 제1회 톈진 그랜드 파이널스 결승에서 벨라루스의 블라디미르 삼소노프(Vladimir Samsonov)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공링후이는 1996년 톈진 대회 우승으로 남자 사상 첫 탁구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얀-오베 발트너, 류궈량 모두 그랜드 파이널스 우승은 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 중에 류궈량은 1998년 파리(Paris) 대회에서 준우승, 얀-오베 발트너는 같은 대회에서 3위에 오른 게 역대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출처 : 빠빠빠 탁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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