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따낸 유일한 메달. 남자 단체 동메달.[1997 맨체스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작성자 이옥수(빠빠빠)
등록일2020-05-13 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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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개최된 제44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중국이 남자 개인단식을 제외한 6개 종목에서 우승했습니다. 탁구 마녀 덩야핑(Deng Yaping)은 여자 단체전(덩야핑, 리주, 왕천, 왕난, 양잉), 여자 개인복식(양잉), 여자 개인단식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대회 3관왕에 올랐습니다. 덩야핑은 역대 3번째(1991 지바, 1995 톈진, 19997 맨체스터) 개인단식 챔피언에 올랐고, 1995년 톈진(Tianjin)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3관왕에 올랐습니다.

 

덩야핑의 우승 행진에 있어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세계 대회 그랜드슬램'이었습니다. 덩야핑은 2회 연속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놓쳐 세계 대회 전 종목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덩야핑은 공링후이(Kong Linghui)와 함께 출전해 1995년 톈진 대회는 결승에서 중국 왕타오(Wang Tao), 류웨이(Liu Wei) 조에 0-3(22-24, 18-21, 9-21) 완패를 당했고, 1997년 맨체스터 대회는 결승에서 중국 류궈량(Liu Guoliang), 우나(Wu Na) 조에 1-3(21-12, 22-20, 19-21, 21-11)로 패했습니다. 결국, 덩야핑은 은퇴할 때까지 세계 대회 금메달만 무려 9개를 따냈지만, 혼합복식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중국 남자는 1995년 톈진 대회 개인단식 은메달리스트 류궈량이 남자 개인단식을 제외한 남자 단체전(딩송, 공링후이, 류궈량, 마원거, 왕타오), 혼합복식(우나), 남자 개인복식(공링후이)에서 우승하며 대회 3관왕에 올랐습니다. 개인단식 디펜딩챔피언 공링후이는 4강에서 벨라루스 블라디미르 삼소노프(Vladimir Samsonov)에 1-3(15-21, 18-21, 21-17, 17-21)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중국이 유일하게 우승을 놓친 종목 바로 남자 개인단식이었습니다. 남자 개인단식은 스웨덴의 얀-오베 발트너(Jan-Ove Waldner)가 크로아티아 조란 프리모라츠(Zoran Primorac), 프랑스 장-필리프 가티엥(Jean-Philippe Gatien/가시앙), 중국 얀센(Yan Sen), 벨라루스 블라디미르 삼소노프를 차례로 꺾고 우승했습니다. 얀-오베 발트너는 1989년 도르트문트(Dortmund) 대회 우승에 이어, 8년 만에 역대 2번째 남자 개인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997년 맨체스터 대회에서 한국은 역대 최악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개인전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고, 그나마 남자 단체전(추교성, 김택수, 이철승, 오상은, 유남규)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노 메달을 피했습니다. 전(前) 대회인 1995년 톈진 대회에서 남자 단체전(추교성, 김봉철, 김택수, 이철승, 유남규) 동메달, 여자 단체전(김무교, 박해정, 박경애, 유지혜) 은메달, 혼합복식(이철승, 유지혜) 동메달을 따낸 성적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최악에 가까운 성적이었습니다.

 

 

11명의 출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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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상)

 

한국은 1997년 맨체스터 대회에 총 11명(남자 6명, 여자 5명)의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남자는 김택수(Kim Taeksoo/세계 5위)가 세계 랭킹으로 자동 선발되었고, 선발전 4명(유남규, 이철승, 오상은, 추교성), 협회 추천 1명(유승민)을 선발했습니다. 여자는 선발전 4명(유지혜, 김무교, 박해정, 김분식), 협회 추천 1명(석은미)을 선발했습니다. 중학생 탁구 신동 유승민(내동중)은 최종 선발전에서 6위에 그쳤지만, 유망주 협회 추천으로 사상 첫 세계 대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습니다.

 

2차 선발전 결과

남 A조 - 1위 추교성(동아증권) 10승/2위 이철승(삼성증권) 8승 2패/3위 권성재(삼성증권) 7승 3패/4위 김봉철(동아증권) 7승 3패 

남 B조 - 1위 유창재(시온고) 7승 2패/2위 유남규(동아증권) 7승 2패/3위 양희석(동아증권) 6승 3패/4위 이상준(대우증권) 5승 4패

여 A조 - 1위 유지혜(제일모직) 7승 1패/2위 석은미(현대) 7승 1패/3위 김무교(대한항공)7승 1패/4위 정윤예(제일모직) 4승 4패

여 B조 - 1위 전혜경(대한항공) 7승 2패/2위 김선영(현대) 7승 2패/3위 박해정(제일모직) 6승 3패/4위 이은실(제일모직) 6승 3패

 

최종 선발전 결과

남자 - 1위 유남규(동아증권) 8승 1패/2위 이철승(삼성증권) 7승 2패/3위 오상은(삼성증권) 7승 2패/4위 추교성(동아증권) 5승 4패

여자 - 1위 유지혜(제일모직) 9승/2위 김무교(대한항공) 6승 3패/3위 박해정(제일모직) 6승 3패/4위 김분식(제일모직) 6승 3패

 

유남규는 1위의 성적으로 세계 대회 출전권을 따내며 1987년 뉴델리(New Dehli) 대회 이후 세계 대회 6회 연속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유남규는 총 10명이 출전한 최종 선발전에서 오상은(Oh Sangeun)에게만 패했을 뿐, 나머지 선수들을 모두 이기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이철승(Lee Chulseung), 추교성(Choo Kyosung)은 1991년 지바(Chiba) 대회 이후 4회 연속, 오상은은 1995년 톈진 대회 이후 2회 연속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남자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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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상)


한국 남자는 그룹별 예선 조 편성에서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홍콩, 덴마크와 함께 C조에 편성되었고, 여자는 헝가리, 영국,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와 B조에 편성되었습니다. 1997년 맨체스터 대회부터 단체전 경기 방식이 바뀌어, 16개 팀을 A. B 2개조 나눈 게 아니라, 24개 팀을 4개 조로 나누었습니다. 각 조 별 1위는 본선 8강에 직행하고, 2위 팀은 각 그룹 3위, 하위 그룹 1위 팀의 승자와 경기를 해 8강에 오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자 단체전 경기 방식 역시 3매치 복식이 없어지고, 주전 2명, 비주전 1명이 출전해 5매치 단식 경기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출발은 여자 대표 팀이 좋았습니다. 여자 대표 팀은 5전 전승 조 1위로 8강에 직행했습니다. 실질적인 조 1위 결정전이었던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3 대 1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조 1위를 결정지었습니다. 여자 대표 팀은 8강에서 귀화 에이스 고야마 치레(Koyama Chire)가 버티고 있는 일본은 3 대 2로 꺾고 4강에 올랐지만, 4강에서 난적(難敵) 북한에 0 대 3 완패를 당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독일과의 3, 4위전에서 1 대 3으로 패하며 최종 4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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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맨체스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C 그룹 결과)

 

남자 대표 팀은 유럽 강호 독일에 0 대 3으로 패해 4승 1패의 성적으로 8강 직행에 실패했습니다. 독일 역시 폴란드에 2 대 3으로 패해 4승 1패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승자승에 앞서 조 1위로 본선 8강 토너먼트에 직행했습니다. 한국은 실질적인 조 1위 결정전이었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1매치 김택수가 슈테판 페츠너(Stefan Fetzner)에 1-2(15-21, 21-18, 17-21)로 패했고, 2매치 유남규가 외르그 로스코프(요크 오스콥프)에 1-2(21-18, 18-21, 16-21), 3매치 이철승이 피터 프란츠(Peter Franz)에 0-2(16-21, 20-22)로 패했습니다.

 

남자 대표 팀은 8강 직행에 실패했지만, 16강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8강에 올랐습니다. 8강은 혼자서 2승을 거둔 유남규의 활약 속에 일본을 3 대 2로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4강전은 디펜딩챔피언 중국이었습니다. 한국은 김택수, 오상은 주전 출전, 유남규 비주전 출전했고, 중국은 류궈량(Liu Guoliang), 왕타오(Wang Tao) 주전 출전, 1995년 톈진 대회 챔피언 공링후이(Kong Linghui)가 비주전 출전했습니다. 

 

한국은 불과 5개월여 전인 1996년 싱가포르 칼랑(Kallang)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3 대 0으로 완파하고 역대 남자 단체전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1매치에서 김택수가 류궈량을 2-0(21-19, 21-17)으로 꺾은 것을 시작으로, 2매치 오상은이 공링후이를 2-0(21-17, 23-21), 3매치 강희찬이 중국 신예 마린(Ma Lin)을 2-0(21-9, 21-19)으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1974년 요코하마(Yokohama) 대회부터, 1994년 텐진 대회까지 아시아선수권 남자 단체전 11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지만, 1996년 한국에 패해 12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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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맨체스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4강 한국 VS 중국)

 

하지만, 1997년 맨체스터 대회는 한국이 1 대 3으로 패했습니다. 한국은 1매치 김택수가 류궈량에 0-2(14-21, 20-22), 2매치 오상은이 왕타오에 0-2(12-21, 7-21)로 패하며 매치 스코어 0 대 2로 뒤졌습니다. 다행히, 한국은 3매치에서 대회 기간 내내 좋은 활약을 보여준 유남규가 세계 1위 공링후이를 2-1(21-18, 10-21, 21-18)로 꺾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4매치 김택수가 왕타오에 1-2(12-21, 21-16, 17-21)로 패하며 한국의 1 대 3 패배로 끝났습니다. 이후, 한국은 3, 4위 전 독일과의 재대결에서 승리하며 최종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독일은 4강에서 프랑스에 당한 2 대 3 역전패의 충격 탓인지, 주전 중 외르그 로스코프와 피터 프란츠를 출전시키지 않았고, 한국은 3 대 0 완승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은 1995년 톈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남자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출처 : 빠빠빠 탁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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