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야핑 자리 이어받은 1999년 에인트호번 세계 챔피언 왕난(Wang Nan).
작성자 이옥수(빠빠빠)
등록일2020-04-27 14:55:54
조회1,809
0
추천하기 스크랩 신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 주세요.

세계 탁구계를 호령(號令) 했던 중국의 덩야핑(Deng Yaping)은 1997년 맨체스터(Manchester)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전격 은퇴했습니다. 은퇴 당시 덩야핑의 나이가 24살(1973년 2월 6일생)밖에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중국 선수들 중에서도 대단히 빠른 은퇴였습니다. 덩야핑은 은퇴 이후, 체육 특기생으로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 영문과에 진학해 제2의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덩야핑은 현역 시절 중국 여자 최초 탁구 그랜드슬램(1991 지바 세계선수권,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홍콩 여자 월드컵)을 달성했고, 4대 메이저 대회(1996 톈진)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덩야핑은 1992년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Atlanta)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대회 2관왕에 올랐고, 한번도 우승하기 힘든 세계선수권대회 개인단식에서 3회(1991 지바, 1995 톈진, 1997 맨체스터) 우승했습니다.

 

중국은 에이스 덩야핑이 조기에 은퇴했지만, 전체적인 전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덩야핑에 이어 왕난(Wang Nan. 王楠), 장이닝(Zhang Yining)이 차례로 데뷔해 중국 대표 팀을 이끌었습니다. 왕난은 1995년 톈진 대회에 처음 출전해 8강에서 중국 류웨이(Liu Wei)에 0-3(6-21, 16-21, 15-21) 완패를 당했고, 다음 대회인 1997년 맨체스터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당시 최고 선수였던 덩야핑에 1-3(12-21, 21-8, 21-11, 21-10)으로 패해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3번째 출전 대회인 1999년 에인트호번(Eindhoven) 대회 결승에서 장이닝을 접전 끝에 3-2(15-21, 14-21, 21-5, 21-12, 21-11)로 꺾고 사상 첫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장이닝은 세계 대회에 첫 출전해 결승까지 오르는 기염(氣焰)을 토했지만, 왕난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 이후, 장이닝은 왕난에게 세계 대회에서 3회(1999 에인트호번, 2001 오사카, 2003 파리) 연속 패배를 당했습니다. 1999년 에인트호번 대회, 2003년 파리 대회는 2번 모두 결승에서 패했고, 2001년 오사카(Osaka) 대회는 4강에서 패했습니다.

 

왕난은 1997년 상하이(Shanghai) 여자 탁구 월드컵, 1999년 에인트호번 세계선수권,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그랜드슬램에 성공했습니다. 왕난의 그랜드슬램은 덩야핑에 이어 중국 여자 2번째 대기록이었습니다. 이후, 왕난은 1998년 대만(Taipei)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2001년 오사카 대회, 2003년 파리(Paris)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세계 대회 3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랜드 파이널스는 1997년 홍콩(Hong Kong) 대회 준우승 이후, 1998년 파리 대회에서 우승하며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왕난은 빠른 스피드, 까다로운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99년 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2개월을 제외한 무려 46개월 동안 세계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기록은 장이닝(81개월), 덩야핑(61개월), 딩닝(50개월)에 이어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1999년 에인트호번 세계 챔피언 왕난


305 (1).jpg

(출처 : 구글)

 

K-1.jpg

(1999년 에인트호번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개인단식 경기 결과)

 

1999년 에인트호번 대회 여자 개인단식 결승전은 덩야핑 은퇴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두 영건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당시, 20살(1978년 10월 23일생)의 왕난은 1997년 맨체스터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결승에 올랐고, 17살(1981년 10월 5일생)의 장이닝은 세계 대회 첫 출전에 결승까지 올랐습니다. 장이닝은 1998년 데뷔 첫해 말레이시아(Malaysia) 오픈, 이탈리아(Italian) 오픈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 세계 대회 첫 출전에 곧바로 결승까지 오르는 기염(氣焰)을 토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4강에서 마지막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왕난은 한국의 류지혜(Ryu Jihae)를 4-3(22-24, 21-9, 21-15, 16-21, 21-16)으로 이겼고, 장이닝은 리난을 3-2(21-18, 10-21, 15-21, 21-19, 16-21)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류지해는 1999년 에인트호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1993년 예테보리 대회 현정화 금메달 이후, 6년 만에 세계 대회 개인단식 입상에 성공했습니다.

 

왕난과 장이닝의 마지막 결승전은, 왕난의 짜릿한 3-2(15-21, 14-21, 21-5, 21-12, 21-11) 역전승으로 끝났습니다. 왕난은 경기가 시작되고 1, 2게임을 모두 내주며 패색이 짙었지만, 3게임을 21-5로 따낸 후, 4, 5게임을 연이어 따내며 승부를 뒤집었습니다. 왕난은 1995년 톈진(Tianjin) 대회 첫 출전 이후, 3개 대회만에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장이닝은 아쉬운 역전패로 17살 첫 출전에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왕난은 2001년 오사카(Osaka), 2003년 파리(Paris)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세계 대회 여자 개인단식 3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장이닝은 3개 대회 연속 왕난에 패한 이후, 4번째 출전 대회인 2005년 상하이(Shanghai)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궈옌(Guo Yan)을 4-2(5-11, 11-7, 11-7, 4-11, 11-8, 13-11)로 이기고 사상 첫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장이닝의 국제 대회 모든 우승 기록에서 세계 대회 우승이 가장 늦었습니다.

 

 

대회 2관왕

 

CHN_Wang_Nan5.jpg

(출처 : 구글)

 

왕난은 여자 개인단식 외에도 여자 개인복식(리주)에서 우승하며 대회 2관왕에 올랐습니다. 왕리친(Wang Liqin)과 함께 출전한 혼합복식은 4강에서 마린(Ma Lin), 장잉잉(Zhang Yingying) 조에 2-3(21-13, 21-8, 12-21, 11-21, 13-21)으로 패해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왕난은 혼합복식 동메달로 개인전 전 종목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왕난은 2003년 파리 대회에서 개인전 전 종목 우승에 성공했고, 마린과 함께 혼합복식에서 우승하며 세계 대회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1999년 에인트호번 대회는 개인전과 단체전이 처음으로 분리된 대회였습니다. 1999년에는 개인전 6개 종목(남녀 개인단식, 남녀 개인복식, 혼합복식)이 개최되었고, 다음 대회인 2000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대회는 남녀 단체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세계 대회 개인전, 단체전 분리 개최는 2001년 오사카 대회에서 다시 동시 개최되었다가. 2003년부터 완전히 적용되어 홀수 년에는 개인전이, 짝수 년에는 단체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출처 : 빠빠빠 탁구클럽)

등록된 총 댓글 수 0